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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저자네이딘 버크 해리스
  • 출판사심심
  • 출판년2020-01-03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2-1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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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새로운 과학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에 대한 뜻밖의 반전이다.”

    자가면역질환, 암, 심장병, 위궤양, 만성 기관지염, 뇌졸중, 편두통…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내 몸을 아프게 한다.

    어느 토요일 아침 5시, 마흔셋의 한 남자가 잠에서 깼다. 그는 별 생각 없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몸을 굴려 침대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하지만 몸을 옆으로 굴릴 수가 없고, 오른쪽 팔은 마비된 느낌을 받는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마비된 것이 오른쪽 팔다리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얼굴을 포함한 오른쪽 몸 전체가 마비된 것이다.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진 그에 대해 의료진이 병력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아내는 이 상황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여겨지는 사항을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평소 운동을 즐겨했고,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는 모든 것이 괜찮다고 했어요. 곧 의사들이 그에 대한 1차 판단을 내린다. “뇌졸중 응급환자. 43세 남성, 비흡연자, 위험 요인 없음.”

    그도 아내도, 심지어 의사들도 몰랐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큰 위험 요인이 있다. 그것은 그가 뇌졸중을 일으킬 가능성을 2배나 높여놓은 요인이다. 그가 자다가 몸 절반이 마비된 채로 깨어날 위험, 그리고 수많은 다른 병에 걸릴 위험을 증가시킨 요인은 희귀한 것이 아니다. 미국 인구의 약 3분의 2가 노출되어 있는 흔한 요인, 바로 아동기에 겪은 부정적 경험이다.(16~17쪽)

    트라우마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보통 질병의 원인을 ‘담배를 많이 피워서’, ‘술을 많이 먹어서’, ‘짜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운동을 안 해서’라는 식으로 개인의 나쁜 생활습관에서 찾는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생물학, 면역학, 임상의학, 사회역학 등의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어린 시절에 겪은 극심하고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자가면역질환, 비만, 심장병, 기대수명 단축 등 신체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소아과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인 네이딘 버크 해리스Nadin Burk Harris는 2007년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동네인 베이뷰 헌터스 포인트에 진료소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심상치 않은 증상을 안고 진료실을 찾아오는 수많은 어린 환자를 만났다. 도무지 몸무게가 늘지 않아 심각한 성장부진을 겪는 아이부터 아빠가 벽을 내리칠 때마다 천식 증상이 심해지는 아이까지, 해리스는 학대, 무시, 방임, 부모의 알코올 및 약물 중독, 정신 질환, 이혼으로 아이들이 받은 정신적 상처가 몸에 극렬한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일반적인 치료법으로는 쉽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서면서 해리스는 아동기에 겪은 부정적인 경험이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면역계와 뇌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신체 건강에 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강한 의문을 품는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원제 : The Deepest Well, 심심 刊)》는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인 저자가 지난 10년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신체 건강과 정신적 고통을 둘러싼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신 과학 연구에 근거해 실질적인 증거를 찾고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주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임상에서 확인한 과정을 담은 책이다. 해리스는 진료 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왜 아동기 트라우마 문제가 일어나는 것인지, 어린 시절 스트레스에 노출된 경험이 왜 중년기나 은퇴기에 건강 문제로 나타나는 것인지, 이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은 있는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들에 차근히 답한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아이가 바꿔놓은 한 의사의 삶

    1만 7421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역학 연구가 밝혀낸 아동기 트라우마의 놀라운 진실

    해리스가 진료실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 가운데 의사로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아이가 있다. 멕시코 이민자 출신 가정의 아이 디에고는 학교에서 여러 문제 행동을 일으켜 ADHD가 의심된다며 진료실을 찾아왔다.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디에고는 만성 천식과 습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스가 발견한 가장 큰 문제는 디에고의 키였다. 7살 디에고의 키는 또래보다 작은 정도가 아니라 4살 아이 평균 정도로 아주 작았다.(28쪽)

    해리스는 디에고의 건강 상태와 성장 환경을 검토하면서 아이가 어릴 때 부모와 가까운 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그 이후부터 ADHD가 의심되는 태도를 보이며 건강까지 심하게 나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압도적인 불행을 겪은 뒤 건강이 나빠진 아이들이 몇몇 정도였다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디에고는 해리스가 만난 수백 명의 아이에게서 보아온 상황을 대표하는 하나의 전형이었다.(34쪽) 사회적 자원이 부족하고 가난과 폭력적인 환경이 일상인 지역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고스란히 몸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에 해리스는 아동기의 불행과 손상된 건강 사이에 생물학적 연관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하며 디에고의 성장 정지 문제를 살펴보던 중 한 논문을 만났다.

    1998년 〈미국 예방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Preventative Medicine〉에 내과의사 빈센트 펠리티Vincent Felitt와 역학자 로버트 안다Robert Anda가 연구한 〈아동 학대 및 가정 기능장애와 성인기 주요 사망 원인들과의 관계: 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Relationship of Childhood Abuse and Household Dysfunction to Many of the Leading Causes of Death in Adults: th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ACE) Study〉(이하 ACE 연구)라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성인 1만 7421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수차례의 면접 조사를 통해 아동기의 불행이 주는 고강도 스트레스와 나쁜 건강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밝혀낸 최초의 연구다.(75쪽) 논문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놀랍도록 흔하다는 것이다. 전체 인구 가운데 67퍼센트가 최소한 한 가지 부정적 경험을 했고, 네 가지 이상인 사람이 12.6퍼센트였다. 둘째,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나쁜 건강 상태 사이에 용량-반응 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가 있다는 점이다. 즉, 부정적 경험을 많이 했을수록 건강에 대한 위험도 크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네 가지 이상을 경험한 사람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심장병과 암에 걸릴 가능성이 2배 컸고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릴 가능성은 3.5배 컸다.(88쪽)

    이 논문은 해리스가 의학 공부를 하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동기 트라우마와 신체 건강의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것이었다. 이에 해리스는 그동안 품고 있던 모든 의문이 한 번에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최선의 치료 방법을 동원했지만 아이들의 건강은 제자리걸음이었고, 불행과 건강 문제의 관계를 점점 뚜렷이 목격하고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발만 구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에게 ACE 연구 논문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이후 해리스의 삶은 더 큰 바다를 향해 급물살을 탄다. 바로 자신을 찾아오는 어린 환자들을 돕고 그들이 겪을 미래의 고통에서 벗어날 실질적인 방법을 찾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신경계, 면역계, 호르몬계에 영향을 미친다

    뇌 과학, 신경과학, 면역학, 임상의학 등 최신 과학을 통해 밝힌 질병과 불행의 관계

    트라우마가 몸에 새겨지고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많은 연구와 책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신경계만이 아니라 면역계, 호르몬계, 심혈관계에도 영향을 끼쳐 평생 동안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뇌 과학, 신경과학, 면역학, 임상의학 등 최신 과학을 동원해 명료하게 증명한다.

    위험을 감지한 우리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격한 화학반응을 촉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몸이 이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반응 체계는 인류가 생존하고 현재까지 번성할 수 있게 해준 기적적인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 모두는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유전과 생애 초기의 경험에 의해 세밀하게 조절되며 고도로 개인화된다.(106쪽)

    문제는 스트레스 반응이 너무 자주 활성화되거나 스트레스 요인이 너무 강력할 때면 우리 몸의 스트레스 온도 조절 장치가 고장 난다는 점이다. 특정 온도에 도달하면 ‘열’ 공급을 차단해야 하지만, 계속해서 체내 시스템 전체에 코르티솔(반복적이거나 장기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신체가 적응하도록 돕는 호르몬)을 쏟아 붓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116쪽) 그래서 아이가 유독성 스트레스, 즉 신체 및 정서 학대, 방임, 양육자의 약물남용 또는 정신질환, 폭력, 심각한 경제적 곤란 등으로 인한 강력하고 빈번하며 오래 지속되는 부정적 경험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기에 더해 유독성 스트레스에 노출된 아이가 적절한 시기에 성인의 알맞은 지원을 받지 못하면 그 영향은 더욱 심각해진다.(118쪽) 디에고 역시 유독성 스트레스 반응을 겪고 있었고 가족 모두 각자의 문제로 디에고의 스트레스를 완화해줄 능력이 없었다. 디에고가 겪은 증상의 조합은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적절한 지원 없이 장기간 활성화될 때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반복적인 스트레스 반응에 특히 민감하다. 고강도의 역경은 뇌의 구조와 기능만이 아니라 아직 발달 중인 면역계와 호르몬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DNA를 읽고 전사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일단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조절 장애 패턴으로 배선되고 나면 그 생물학적 영향은 점점 퍼져나가 신체 내부 기관들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신체는 커다랗고 섬세한 스위스 시계와 같아서 면역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심혈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깊이 연관된다.”(120쪽)



    해리스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의 수가 많을수록,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다수의 스트레스 요인들에 더 자주, 더 강렬하게 반응한다고 밝힌다. 그리고 우리 몸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신경계, 호르몬계, 면역계를 기반으로 상세히 설명한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이 우리의 몸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들

    1. 신경계 - 생존을 위해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최전선

    뇌 부위 가운데 편도체와 전전두피질, 해마, 그리고 청반에 있는 노르아드레날린 핵은 스트레스 반응의 최전선에 있다. 그렇기에 정상에서 심하게, 그것도 오랜 기간 벗어난 스트레스 반응에 가장 큰 피해를 입으며, 그 결과 각자 일하는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저자는 특히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장기적 문제를 초래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 VTA을 주목한다. 이는 쾌락과 보상 중추로, 행동과 중독에 영향을 미친다.



    “몸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계속해서 과부하에 걸리면 도파민 수용체의 감도가 엉망이 된다. 전과 똑같은 정도의 쾌감을 느끼려 해도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양의 자극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복측피개영역에 어떤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 고당분 고지방 식품 같은 도파민 자극제들을 갈망하면, 그 변화는 위험한 행동 또한 더 많이 하게 만들 수 있다. ACE 연구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노출된 정도와 복측피개영역을 활성화하는 많은 활동 및 물질 사용 사이에 용량-반응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ACE 지수가 4점 이상인 사람은 0점인 사람에 비해 흡연 가능성이 2.5배, 알코올의존 가능성이 5.5배, 정맥 주입 마약을 사용할 가능성은 10배다. 따라서 어린 사람들이 담배나 술처럼 해로운 도파민 자극제에 의존하는 것을 방지하고 싶다면, 삶의 초기에 역경을 겪는 일이 뇌의 도파민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143쪽)



    2. 호르몬계 - 스트레스 반응에 가장 민감한 영역

    우리 몸의 호르몬계에 속한 거의 모든 것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다. 성장호르몬,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등의 성호르몬, 갑상샘호르몬,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은 모두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동안 대체로 양이 감소한다. 건강에 미치는 주요한 영향들 중에는 난소와 고환(이 둘을 생식샘이라고도 한다)의 기능 이상, 성장정지, 비만 등이 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의료 서비스 접근성도 똑같으며, 안전한 놀 곳과 영양가 있는 음식이 똑같이 부족한데도 우리 환자들 중에는 ACE 지수가 0점인 아이들도 있다. ACE 지수가 높은 아이들의 호르몬계에 유독성 스트레스가 어떤 짓을 하는지 알게 되면 그 아이들이 과체중인 것이 주로 패스트푸드만 먹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식품 사막(영양가 있는 음식이 결핍된 동네들을 꼭 집어 가리키는 용어다)에 살고 있으며, 타코벨이 맥도날드를 대체할 건강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양육하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런 것들이 문제를 악화하는 데 분명히 한몫을 담당하지만, 그것들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연구 데이터는 유독성 스트레스의 기저에 깔린 메커니즘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즉 대사이상 역시 중요한 원인이었다. 식품 사막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건강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에 더해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 고당분·고지방 식품에 대한 욕망을 이길 수 없다면, 감자 튀김 대신 브로콜리를 택하기란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147쪽)



    3. 면역계 - 환경에 반응하며 발달하는 기관

    아이가 태어날 당시에는 뇌와 신경계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듯이, 면역계 역시 태어나고 한참 뒤까지 발달 과정을 이어간다. 아기의 면역계는 생후 첫 몇 년에 걸쳐 아기가 처한 환경에 반응하며 발달한다. 스트레스 반응 조절 장애가 생기면 면역과 염증 반응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데, 이는 면역계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에 스트레스호르몬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 반응 조절 장애는 염증과 과민 반응, 심지어 그레이브스병 같은 자가면역질환까지 증가시킨다. 많은 사람이 이런 병들은 유전적 불운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다음 연구는 아동기의 불행이라는 환경적이고도 구체적인 요인이 자가면역질환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ACE 연구가 처음 발표된 후 수년 동안 과학자들은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자가면역질환의 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왔다. 연구 결과들을 보면 아동기의 스트레스가 아동과 성인 모두의 자가면역질환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중보건학자 샨타 듀브Shanta Dube는 펠리티 박사와 안다 박사와 협력해 1만 5000여 명의 ACE 연구 참가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들의 ACE 지수와 그들이 류머티즘 관절염, 낭창, 제1형 당뇨병, 셀리악병(만성 소화 장애증), 특발성 폐섬유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으로 입원한 빈도를 검토한 것이다. 듀브가 발견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ACE 지수가 2점 이상인 사람은 0점인 사람에 비해 자가면역질환으로 입원하는 비율이 2배 이상이었다.”(150쪽)





    가난하든 부자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은

    그 자체로 소리 없이, 치명적으로 우리를 병들게 한다

    해리스는 수많은 ACE 연구를 분석하면서 유독성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을 미리 찾아낸다면 관련 질병들을 일찍 감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 그뿐 아니라 손상된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치료함으로써 어쩌면 미래의 질병까지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그는 자신보다 더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대해 알리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해리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큰 성공을 거둔 여성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참석자 모두 백인이었고, 변호사, 엔젤 투자자, 컨설팅 전문가, 성공한 기술기업가 등 샌프란시스코의 상류층을 형성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ACE에 대해 알리며 유독성 스트레스를 일찍 선별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해시킬 수 있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모임에 참석한 열 명 중 절반이 자신이 겪은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관련한 과거사를 털어놓았다.(300쪽)

    봇물처럼 터져나온 그들의 과거사는 부모의 정신질환이나 중독 문제, 성폭행, 신체적 학대나 감정적 학대, 가정 폭력 등 대부분이 해리스가 자신의 환자들에게서 들었던 것과 아주 비슷했다. 특히 IT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캐럴라인이 조심스럽게 꺼낸이야기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으로 인해 한 가정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302쪽) 캐럴라인은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고 자신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남편으로 인해 잦은 부부싸움을 하며 공황장애까지 겪었다. 그리고 그간 부모의 싸움을 울음으로 견뎌내던 어린 아들은 심리적 트라우마에 노출되어 ADHD 진단을 받았다. 몇 년을 힘겹게 버티던 가운데 캐럴라인은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아들의 용기 있는 한 마디에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아들과 함께 심리치료를 받으며 고통의 터널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해리스는 통계상 자신의 주변에 어린 시절에 부정적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알았지만, 그때까지 진료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관해 그렇게 솔직한 대화를 나눠본 것은 처음이었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종종 나는 이런 말을 한다. 베이뷰와 퍼시픽 하이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베이뷰에서는 성추행을 저지른 삼촌이 누구인지 다들 아는 것이라고. 이는 우편번호가 94115인 퍼시픽 하이츠 지역에 아이에게 해를 입힐 만한 사람이나 약물의존증 또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단지 그곳 사람들은 그런 일을 입에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323쪽)



    이 사례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나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게만 발생하는 문제라는 낙인을 깨뜨린다. 해리스에게 강력한 과학적 영감을 준 펠리티와 안다의 ACE 연구에서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70퍼센트’가 ‘백인’이었고, ‘대학’을 나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애써 무시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강화했다.

    특히 해리스는 이 만남을 계기로 유독성 스트레스가 은폐와 수치심을 먹고 자라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이에 특정 공동체만을 위한 해결책으로는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독성 스트레스는 인간의 기본적 생물학에 관한 이야기이며 부정적 경험은 인종과 지리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성 스트레스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특정 계층에 대한 비난과 고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수치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즉, 과학에 기초해 독감이나 유행병 같은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만큼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공중보건 관점에서 제안하는 유독성 스트레스를 막는 방법

    이 책은 아동기 스트레스의 부정적 영향의 위험성을 경고할 뿐 아니라 그 영향을 줄일 방법도 제시한다. 해리스는 진료 현장에서 유독성 스트레스의 영향을 해결하기 위해 실시한 여러 방법 가운데 효과가 증명된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충분한 수면과 정신 건강관리, 건강한 인간관계 유지,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영양섭취, 마음챙김이다. 여섯 가지 요소는 앞서 밝힌 유독성 스트레스가 신경계와 내분비계와 면역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여섯 가지 요소들은 아이의 보호자들과 유독성 스트레스를 경험한 당사자들이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쓴다면 분명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해리스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치료에 앞서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동기에 이루어지는 신경계·내분비계·면역계의 발달이 아이의 인생에서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더 일찍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해리스는 어린 아이들의 건강과 발달 정도를 측정하는 기본 검사(예를 들어 황달검사, 선천성대사이상검사, 난청 검사 등)에 유독성 스트레스 검사(ACE 검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해리스가 의료 현장에서 실제 사용한 ACE 검사 설문지는 본 책 부록에 수록되어 있어 누구든 자신의 ACE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개별 병원 차원이 아닌 전체 공중보건 차원에서 이 검사를 실시해 이에 효과적인 치료법을 함께 찾아내고 실행하는 사회와 국가 단위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중보건 분야의 대표 사례 중에 우물 이야기가 있다. 1854년 8월 말 런던에서 극심한 콜레라가 발생했다. 발병지가 모두 공동 우물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는데 펌프 손잡이를 없애 우물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자 발병이 잦아들었다는 내용이다. 해리스는 이 사례를 언급하며 “100명의 사람이 모두 같은 우물물을 마시고 그중 98명이 설사를 했다면, 계속 항생제 처방을 할 수도 있지만 잠시 멈추고 ‘이 우물에 대체 뭐가 있는 거지?’라고 질문해볼 수도 있다.”(44쪽)고 말한다. 해리스는 진료실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청진기 한 번 대보지 않고 약만 처방하는 것은 우물 사례에 등장한 환자들에게 무분별하게 항생제만 처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해리스는 눈앞에 보이는 약 처방에 급급하지 않고 아이들이 마시는 우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 10년 넘게 공들여 조사해 그 우물들이 모두 유독성 스트레스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단순한 치료를 넘어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책의 원제가 《The Deepest Well》(우리말로 《가장 깊은 우물》)인 이유다.

    아동기의 불행은 개인과 한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개인을 둘러싼 가정이, 주변 환경이, 사회시스템이 그 사람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점이다. 아이들은 한없이 연약하고 사회는 그 고통에 무지하다. 그것이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지독한 현실이다. 모두 자기 고통만 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와 주변 환경으로 인해 받는 나쁜 영향은 쉽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아동학대 문제에 반짝 관심만 기울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사례들은 그저 먼 나라 누군가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일 수 있다. 해리스가 제시하는 폭넓은 과학적 근거와 다양한 사례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게 하고 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게 할 것이다. 가정과 지역 사회, 학교 등 아이들이 자라는 모든 공간에서 유독성 스트레스에 노출된 아이들을 돌보고 이미 어른이 된 피해자들에게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릴 때 우리 사회의 디에고가 건강한 삶을 회복하고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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