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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에세이
  • 저자허지웅
  • 출판사문학동네
  • 출판년2014-10-18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1-15)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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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는 허지웅’의 에세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저는 와 저 자식 아직도 쓰고 있네? 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며 징그럽게 계속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글쓰는 허지웅이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그의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기억, 20대 시절 그가 맨몸으로 세상에 나와 버틴 경험들과 함께, 소용돌이 가득한 이 시대에 한 사람의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견디고 화내고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을 꿈꾸며 써내려왔던 글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하며 버텨왔는지가 문장마다 낱낱이 박혀 있는 ‘글쓰는 허지웅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무엇보다도 ‘버티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명제였다는 그에게, 버티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들은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간절히 버티고 싶은 당신에게, 그러나 갈수록 점점 더 버티기 힘들어질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끝내 버텨야만 할 우리 모두의 삶을 향해, 허지웅이 들려주는 가끔 울컥하고 때론 신랄한 이야기들. 그가 말하는 ‘버티는 삶’이라는 묵직한 화두는, 매일 하루만큼의 삶을 버텨내고 돌아오는 우리들의 가슴을 흔든다.



    우리는 버텨야 합니다.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어느 누가 손가락질하고 비웃더라도, 우리는 버티고 버티어 끝내 버티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야만 합니다. 제 인생이 닳고 닳아 한줌의 비웃음밖에 사지 않더라도 끝내 그거 하나만은 챙기고 싶습니다. 그래도 쟤 꽤 오래 버텼다, 라는 말 말입니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넌덜머리가 나고 억울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문장을 소리내어 입 밖으로 발음해보며 끝까지 버팁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저는 와 저 자식 아직도 쓰고 있네? 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며 징그럽게 계속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_본문 중에서





    버티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처세라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 외에는 딱히 별 방도가 없다 여기는 자의

    인생사 중간 갈무리




    저자는 이 책을 “버티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처세라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 외에는 딱히 별 방도가 없다 여기는 자의 인생사 중간 갈무리”라 정의한다. 첫번째 에세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 에세이에는 그간 절판되어 있었던 첫번째 산문집의 글이 몇 편 실려 있고, 생계형 글쟁이로 계속 살아오면서 신문과 잡지에 써왔던 글들, 그리고 그의 인생사가 담긴 글과 일기가 담겨 있다.

    《엑스파일》을 기다리는 동안 가스레인지에 라면물을 올리며 평화롭게 시작되는 첫 글. 그러나 갑자기 비명처럼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오고, 허겁지겁 달려간 곳에서는 어머니가 뺨을 맞고 있다, 그것도 생판 남이 아닌 친지로부터. 뺨을 맞고 온몸에 힘이 빠진 엄마에게 신을 신기고 그곳을 빠져나오며 그는 말한다.

    “작은외삼촌 안녕히 계세요.”

    부모가 세상으로부터 모욕당하는 것을 본 자식은 사는 동안 내내 그 일을 잊지 못하게 된다. 아니, 모욕당하는 부모의 모습보다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흔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첫 글로 자신의 가장 오래고 아픈 기억을 내세운 그는 세상에 그 어떤 절대적인 선도, 대단한 악도 없다는 것을, 산다는 것은 이토록 치사하고 더럽고 아픈 것이며 종국에는 그것을 껴안고 공생하며 살아내는 것이 평범한 어른이 되는 법임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_‘나는 별일 없이 잘 산다’, 37쪽



    이 책에는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밤에는 고시원 야간총무로 일하고 ‘아침마다 피 흘리듯 어거지로 눈을 치켜뜨며’ 한 시절을 버텨내야 했던 그의 20대가 있고, 최근 방송에 출연하면서 ‘원인 모를 유명세’를 얻은 이후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소회와 고백도 있다. 방송하면서 좋은 형과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글쓰는 허지웅’의 본업을 지키기 위해 소속사에 들어가지 않고 버티면서 생겨나는 황당한 일들도 있다.



    그렇게 밥벌이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도 종종 맞게 된다. 황당한 일도 많고 억울해도 억울하다 말 못할 조리돌림도 있으며 수치스러운 상황도 있고 도무지 얕다 얕다못해 습자지 같은 사람의 낯짝과 거짓말을 카메라 앞이라 꾹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부러 소속사를 두지 않다보니 연예인들과 똑같은 환경 안에 있으면서 정작 보호와 관리는 받지 못하는 불안함, 현장에서 겪게 되는 서운함, 때로는 차별도 있다.

    그럴 때마다 글쓰는 허지웅입니다, 라는 말을 입으로 소리내어 발음해본다. 저 말은 내게 전보다 더 절실한 의미가 되었다. 나는 전에도 글을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다. 글쓰기로 여태 먹고살아왔다. 나는 나의 이 별것 아닌 재주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제 와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냥 방송 건달일 뿐이다. 쓸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몸이 가장 많이 상했다. 그래도 컴퓨터 앞에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앉아 있는 습관은 버리지 않았다. 엉덩이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_‘글쓰는 허지웅입니다’, 26~27쪽



    어느 연예인의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험담하는 저열한 사람을 떠올리며 ‘나는 당신의 후배가 아니’라고 쓰고, 그런 한심한 치를 선배 취급해주고 싶은 마음 따위도 눈곱만큼도 없다고 독설을 날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는 계속 살아가고 쓴다.

    또한 마땅히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 부정되고 잊혀버리는 세상사에 분노하고 독한 말을 날리는 한편으로, 그의 일기장을 열어보는 듯 솔직한 에세이들에는 어려운 삶의 조건 속에서도 끝내 그를 지켜낸 어머니나 봄날의 따스함, 새우깡을 들고 아장아장 그의 집 앞을 맴도는 애기처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풍경들이 아름답게 수런거린다.

    방송에서나 어느 자리에서나 언제나 “글쓰는 허지웅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허지웅은, 이렇게 이 책에서 그 말에 부끄럽지 않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내고 있다.





    “적응하고 싶다. 섞이고 싶다. 불만을 가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이 세상 아래서 웃는 것이다.”




    2부의 제목은 ‘부적응자들의 지옥’이다. 부적응자들에게 한없이 엄혹하여, 애당초 전혀 적응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마저 저도 모르게 적응하게 만드는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허지웅의 사회적인 발언들이다. 그는 군조직의 ‘관심사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다면 이 세계라는 조직에서 우리가 부적응자로, ‘관심국민’으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 있는지 묻는다.



    죽이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렴하게 착취당하는 자들과, 죽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조직에 맞게 어른다워지는 것이라 착각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슬프다. 한국의 군대는 주변부의 죽음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도발하게 만든다. 그곳에 우리는 꾸역꾸역 아들과 형제와 친구들을 밀어넣고 있다. 남자가 되어 돌아와라, 는 말을 남기며.

    한국 군대라는 조직은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축소판이다. 대체 한국에서 지킬 것을 지키고 보고 들을 것을 빼놓지 않아가며 부적응자가, 관심국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나. 부적응자 가운데 적응하고 싶지 않고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다는 이유로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얻는다. 그리고 사건이 생기면 책임을 강요당한다. 적응하고 싶다. 섞이고 싶다. 불만을 가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이 세상 아래서 웃는 것이다.

    _‘부적응자들의 지옥’, 136쪽



    용산에 치솟았던 화염, 가자지구의 밤, 어느 관심사병의 죽음, 광주항쟁 등 그는 여기서 우리가 이 세계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기억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호명해낸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공감과 기억을 요구한다.



    그것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다. 최소한의 공감하는 능력. 아,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로 우리의 공감하는 능력을 포기하며 체념하고 있다. (…) 그러나, 우리가 우리 행동과 생각의 준거를 과연 세상의 소위 ‘현실’이라는 것으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좀더 어른스럽게 정당한 것일까. 바로 그 ‘현실’이라는 것은 굳이 우리가 행동의 준거로 삼아 응원하고 부추기지 않더라도 저 홀로 알아서 능숙하게 재생산된다. ‘현실’을 존중하는 것과 ‘현실’에 종속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최소한의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거나 외면한 채로, 우리는 어느 순간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급하고 묵직한 지상의 문제이며, 진짜 현실이다.

    _‘최소한의 공감하는 능력에 대하여’, 170~172쪽



    1부의 마지막 글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기고백이자 희망으로 끝났다면, 2부의 마지막 글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현실에 종속되지 않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그것은 눈이나 머리가 아닌, 두 손과 행동으로 행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당신이 ‘그 일’을 해내기를, 그리하여 언젠가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길 희망한다.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3부는 우리가 손쉽게, 하지만 잔인하게 단죄했던 특정 사건들에 대한 기록서이다. 세상엔 명쾌하고 영원불멸한 선악구도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늘 속에 숨어 타인에게 잔인한 돌팔매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순식간에 악마로 몰았다가 천사로 추앙하기도 하는 악플러들과 가십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이 있다.



    세상은 얼마나 쉽게 이유를 만들고 합리를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누군가의 신념을 매도하고 개성을 희롱하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얼마나 편리한 곳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_‘최민수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190쪽



    ‘언론의 코미디’로밖에 볼 수 없었던 최민수 노인 폭행 관련 보도,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둘러싼 여성 음부 그림 논쟁 등 세세한 사건 기록들과 함께, 그 자신이 지독한 악플을 버텨내고 사람들의 말잔치의 대상이 되면서 느꼈던 것들, 그리고 누군가의 면전에서는 감히 쓸 수도 없을 만한 언사들을 손쉽게 키보드로 발신하며 쾌감을 느끼는 악플러들에 대한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토록 교회가 많은 나라에서 나 같은 냉담자마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의 교훈이 쉽게 간과된다는 건 괴상한 노릇이다.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대목은 이 불행한 여인에게 연민을 가지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대목에서 방점은 ‘먼저’에 찍히는 것이다. 백 개의 돌팔매 안에 돌멩이 하나로 숨어 있을 때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1/N이라는 익명의 폭력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이 타인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으라는 이야기다. 그것을 알고도 책임질 수 있으면 돌을 던지라는 말이다. 그럴 수 있는가? _‘옥소리 사태: 1/N의 폭력’ , 187쪽.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넌덜머리가 나고 억울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을지라도…

    모두들, 부디 끝까지 버티어내시길.




    챔피언 아폴로와의 시합 전날 밤이다. 록키는 벌벌 떨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보다 못한 그의 연인 에이드리언이 시합을 만류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록키가 말한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_‘버티는 삶에 관하여’, 367쪽.



    4부 ‘카메라가 나를 본다’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카메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그를 바라본다’. 영화와 실제 삶이 만나고 융화하는 4부에서, 그는 영화 《록키》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영화 《록키》에서는 참으로 현실적이게도 록키가 챔피언과의 경기에서 패배한다. 그러나, KO패를 당하지는 않았다. 록키는 그토록 소원했던 것처럼 15라운드를 두 발로 끝까지 버텨내고, 관중들로부터 박수를 받는다.

    작가 허지웅이 말하는 ‘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니다. 그러면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그는 단언한다. 버티는 삶이란 자기만의 방식과 힘으로 끝끝내 서 있는 것, 중간중간 다운당하고 계속 얻어맞고 비난받아 찢어질지언정, 15라운드 종이 울릴 때까지 흰 수건을 던져 먼저 항복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삶을 말한다.



    저마다의 인생의 15라운드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설령 그 링 위에서 록키처럼 패배하고 오열하게 될지라도, 그래도 오로지 나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버티는 삶’을 온전히 살아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버티는 삶을 향해 눈물겨운 화두를 던져주는 이 책에서 허지웅은 끝내 “버티어내는 삶의 자세가 세대와 계급을 초월해 모두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참 별거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주 가끔 숭고해질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그 버티어내는 자세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설득해내고야 만다.



    인생의 좌표라는, 그 단어부터 너무나 거대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세상의 말에 더이상 무심할 수 없는 나이에 닿아가면서, 결국 버티어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하되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는 것도, 좀더 많이 거머쥐는 것도 아닌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버티어내는 것. (…)

    모두들, 부디 끝까지 버티어내시길.

    _‘버티는 삶에 관하여’, 368쪽



    당신이 방송에 비치든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알든 모르든, 평소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이 책을 읽는 데는 아무 상관 없다. 당신이 지금 버티고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버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지금, 같은 시대를 두 발로 버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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